북한이탈주민을 통해 보는 SDGs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것’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 의제 (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즉, SDGs(지속가능발전목표)에 있어 중심적이고 혁신적인 약속이다.

그러나 공식 모니터링 자료는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불충분하고 선택적으로 이행하는 모습만을 되풀이한다는 것 시사한다. 


본 섹션은 이처럼 현실과 SDGs에 대한 약속에 괴리가 존재하는 북한에서 거주했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이 증언들은 북한 당국이 2030 의제을 채택한 2015년 이후 시기에 북한에 거주했고, 현재는 남한에 정착해 있는 북한이탈주민들로부터 수집되었다.

해당 증언들의 출처는 북한인권정보센터 통합 인권 DB (2021년 기준, 80,000건의 인권침해사건 및 50,000명 인권침해 관련자 정보 보유)이다.

SDG 1 


모든 곳에서 모든 형태의 빈곤을 종식한다

“아직도 꽃제비들 많아요. 애육원이 있다고 하는데 애육원도 수준이 있어야 들어간다고 그래요. 평성 역전에 나가면 꽃제비들이 많아요. 애육원에서도 자기네도 식량도 없거니와 보장도 못 받으니까 안 데려가려고 해요. 처음에 애육원을 설치했을 때는 보장이 잘됐었대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고 그러더라고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학원 거기서는 애들이 다 이렇게 뛰쳐나오더란 말입니다. 아 일을 너무 시키고 뭐 먹는 것도 진짜 이런 옥수수 이런 걸 먹여 가지고. 내가 함흥에 있을 때, 함흥에 과학자 아파트라고 지금 건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렇게 우리 대학에서 이렇게 지원 나갔는데 학원 애들, 부모 없는 학원 애들이 거기 일하러 오는데, 이렇게 돌격대가 입는 이런 시퍼런 옷을 입혔는데, 14년 8월 달쯤에. 애들이 오는데 정말 뭐 키가 한 1미터 20 정도 되는, 그게 다 18, 19살짜리인데 먹지 못해 가지고. 그러니까 키 작은 애들이 일하러 삽이랑 들고 이렇게 걸어오는데. 이런 시설에 있는 애들보다 꽃제비가 더 많지요. 애들이 거기 있기가 더 끔찍하니까 차라리 나와서 이렇게 거지가 낫다”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여맹에서 말하기를) 장군님 무슨 받드는 성공의 길로 여자들도 한 몸 바쳐서 이바지하자. 돈으로 이바지 못 하면 육체적으로도 나와서 도로 닦기라든가 철도, 이런 거 해야 된다. 여기는 사회봉사 활동 같은 거는 하고 싶은 사람이 희망해서 나오는데 우리는 무조건 나와서 해야 되고 못 가면 돈으로 내야 되고. 그저 강제적으로 나와서 할 수 없이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여맹회의 거기 나가서 자꾸 비판하고 하니까. 그게 우대가 아니에요. 거기 안 나가면 계속 돈이에요. 거기 안 나가면 정치적으로 사람을 매장시키는 거나 같죠. 내가 나가기 싫어도 나가야 되고 안 나가면 돈으로 내야 되니까. 이게 강제노동이나 같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여맹에서 말하기를) 장군님 무슨 받드는 성공의 길로 여자들도 한 몸 바쳐서 이바지하자. 돈으로 이바지 못 하면 육체적으로도 나와서 도로 닦기라든가 철도, 이런 거 해야 된다. 여기는 사회봉사 활동 같은 거는 하고 싶은 사람이 희망해서 나오는데 우리는 무조건 나와서 해야 되고 못 가면 돈으로 내야 되고. 그저 강제적으로 나와서 할 수 없이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여맹회의 거기 나가서 자꾸 비판하고 하니까. 그게 우대가 아니에요. 거기 안 나가면 계속 돈이에요. 거기 안 나가면 정치적으로 사람을 매장시키는 거나 같죠. 내가 나가기 싫어도 나가야 되고 안 나가면 돈으로 내야 되니까. 이게 강제노동이나 같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2 


기아를 종식하고, 식량 안보를 달성하며, 

개선된 영양상태를 달성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강화한다

“(배급을) 왜 안 주냐면 저희가 산에다가 농사를 짓잖아요. 그 농사를 짓는 거를 배급으로 대체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또 (개인) 농사도 못 짓게 하거든요.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하고. 완전 죽으란 소리지. 작년에도 이거 심지 못하게 해서, 그래 우리 시아버지가 ‘너네 이거 배급도 안 주고. 국가적으로 어려운 거 아는데 백성들은 뭘 먹고 살라는 거냐. 차라리 우리를 다 죽이고 (나무) 심어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못 심는다.’ 그랬어요. 소가 없어서 남편이 앞에서 끌고 제가 가대기질 하는데. 산림감독원들이 올라와서 그거를 막 매치면서 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 땅을 다 기관, 기업소한테 인도해 줬다는 거에요. 나무 묘목을 심게. 그런데 그건 심을 때가 이미 지났어요. 봄에 심어야 묘목이 살지 여름에 심으면 죽어요. 그래서 제가 “(나무 묘목) 심어라 심으면 내가 묘목도 가꾸고 해서 살겠다” 하니까 그렇게는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니 그러면 너네 어찌라는 거야, 나를 죽이자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가 언제 죽으랬는가?” 그래요. 아니 그게 나라에서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 하고 죽으라는 거 아닌가, 막 이렇게 싸움하니까 우리 시아버지가 당원이었고 나도 당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야, 나도 당원인데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늙었으니까 일없어. 정치범에 들어가도 돼. 내 새끼들이 불쌍해 그렇지.” 이렇게 말 하시고. 우리 아버지 전쟁 일어나서 5살 때 부모 잃고 고아로 크셨는데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근데 그 때 고생보다 지금이 더 하대요. “북한이 망하려나 보다” 자꾸 그러시더라고요. 전쟁이 나서 맨발로 돌아다니면서 부모 찾으러 다니던 그때보다 지금 고생이 더하대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약 같은 거는 국가에서 다 제공 해줘요. 국가에서 포함된 농장이라고 치면 다 줘요. 요즘에는 개인 농장 보다 국가 농장이 많아요. 국가 땅이라면 더 좋고. 길옆에 있는 땅은 다 국가 땅이고 산꼭대기 위에 있는 땅은 개인 땅이었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배급 없어도 다 장사하죠. 장사는 다 불법이긴 한데 그렇게 안하면 굶어 죽으니깐. 장사 안 하는 사람들은 간부들이나 국가에서 주는 게 있어요. 직장 다닌다고 해서 다 주는 게 아니고. 위에 간부들 만 받는 거예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장원들은 한 해 농사를 지어도 바치는 게 있어요. 바치고 나면 봄에는 정말 먹을 게 없어요. 몇 대 몇으로 강냉이를 꾸어먹고 그렇더라고요. 항상 먹을 게 없어가지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국가에서 주는 식량으로는 다 충족 못하죠. 한 30%정도는 충족하고 나머지 70%는 장마당에서 샀어요. 식량이 어쨌든 저는 그래도 돈 주고 사서 먹었어요. 다른 집들은 식량이 좀 곤란해서 집도 팔고 싼 집을 해서 사는 사람들도 봤어요. 우리 윗집에 있는 아줌마도 집에 애들이 3명 됐는데 한창 먹을 나이니까 식량이 부족해서 그 여자가 피를 뽑고 그랬어요. 그러다 나니까 평양에 행사하러 나가게 되면 쓰러져서 업혀 들어오고 그랬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3 


모두를 위한 전 연령층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고

웰빙 (well-being)을 증진한다

“기형아가 사망하는 경우가 좀 있고 정상아는 사망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기형아는 살지 못해요. (보살피지 않고) 어느 정도 두면 다 죽어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이완성 출혈이라고 있는데 해산 후에 바로 출혈이 시작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산모가 백프로 죽는다고, 사는 경우가 없어요. 일 년에 한 두 번 있죠.”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에이즈를 21세기 흑사병이라고 강연해요. 보건인력 대상으로. 실제 환자 발생은 모르지. 정확한 정밀검사를 못 해봤으니까 모르긴 하겠는데 북한에 에이즈가 나왔다 그런 소리는 없었어요. 강연내용은 문란한 자본주의 물젖은 자들은 발생할 수 있다. 외국에 갔다 오면 주의해야 하고 중국이든 어디든 대체로 가지말고...그런 내용.”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결핵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원래는 없어졌었어요. 언제 없어졌냐면 회령시를 ‘김정숙 어머니’ 고향 땅이라고 해가지고 유엔에서 주는 결핵약을 회령 쪽에 쏟아부은 적이 있거든요. 3년간 넣었었을 거예요. 그것도 2007년도인지, 그때부터 2010년도까지인지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오기 전까지는 결핵약이 없어서 환자들이 다시 재발돼서 엄청 고생한다 했거든요. 그 시기에 그 약을 다 쏟아부었을 때 결핵 환자가 보기 드물었어요. 그러다가 2011년 이때 갑자기 활성화가 되는 거예요. 결핵이... 그냥 호흡기 환자로 들어오면 다 결핵이었어요. 결핵 검사하면 다 결핵 양성으로 나왔어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이제는 감기가 와도 빙두를 쓰려고 하고, 허리 통증이 와도 빙두를 쓰려고 하고. 축농증, 코질환, 구강질환도 다 빙두를 쓰려하고 그러더라구요. 빙두가 마약 아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충 짐작했던 건데, 빙두를 쓰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더 심각한 사람들(심한 중독 증세)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성동’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병원에 환자들을 보내요. 그걸 ‘정신 병원’이라고 불러요. ‘49번 병동’이라고도 하구요. 거기서 진찰해주는 게 특별한 게 없어요. 그냥 환자들을 가둬놓고 ‘아미나진’이라고 진정제 같은 걸 줘요. 그냥 그렇게 가둬놓는 거에요. 40일 동안 갇혀 있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6개월 동안도 갇혀 있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거기는 교통사고면 거의 죽거나 완전 병신이에요. 어지간히 (사고) 잘 나지 않지만, 길이 단통이고 보호장치가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일반 트럭 그 위에도 사람이 다 타는 거예요. 원래 사람 안 태우게 돼 있는데. 여기(남한)서는 차 안에서도 벨트 매는데, 거기는 꼭대기에 덜렁덜렁.. 타고 가자고…”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출산 전에 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병원은 멀고 근근이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귀찮고, 애 낳기도 원하지 않는데 피임 같은 것도 돈 없는 사람들의 한에서는 잘 안 되거든요 비싸고 하니까. 피임을 못 하고 애를 낳지 말아야 하는데 애는 있는데 그러니까. 그러니까 병원에 가자면 거리상으로도 멀고, 내가 오전 시간에 병원에 가면 내일 이제 먹을 벌이를 못 하는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11년까지는 재사용이 많았고, 12년부터는 환자 개인의식도 많이 깨더라구요. 그러면서 환자 자체가 주사기를 준비해오고, 우리는 입원할 때 기본 주사기를 사 오라고 해요. 정맥주사기 2개, 근육주사기 2개, 잠적(링거) 줄도 본인보고 사오라 해요, 바늘 달린 줄 1개요. 줄도 끓임 소독으로 재사용해요. 막판 들어서는 (끓임 소독) 잘 안 한 거 같아요. 사람들이 다 사 오니까. 그나마 중국에서 많이 나오다 보니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조건에서 많이 사 왔어요. 그전에는 의료기기 구할래야 구할 수 없어서 고무줄로 했거든요. 금방 제가 들어갔을 때는 고무줄로 했어요. 그것도 한 삼십개 밖에 없었거든요. 점적 한번 맞으려면 중증 환자들 우선 놓고, 모자라면 일반 환자는 먹는 수액용으로 줬어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강물을 그대로 주는지, 나오는 물 자체가 시꺼먼 물들이 나와요. 북한에서는 물을 끓여 먹지도 않죠. 전기가 있나. 겨울이 되도 불을 못 때는데. 나무가 있어야 물을 끓이지. 가라앉히거나, 그나마 물이 없으면 그대로 먹는 거예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4


모두를 위한 포용적이고

공평한 양질의 교육 보장 및

평생교육 기회를 증진한다

“우리 학급이 30명이었는데 한 3~40프로는 그때 못 갔는데, 그 후에 저 북쪽으로 양강도 쪽으로 올라가 보니까, 2014년도, 그때 거기는 더 안 가더란 말입니다. 처벌은 없습니다. 처벌은 없고 그저 계속 찾으러 다니다가 맙니다. 애들이 찾으러 다닙니다. 내가 북한에서 그 무슨 학급 반장 식으로 그런 거를 조금 했는데 그거 때문에 내가 상당히 공부도 못하고 오히려 오후만 되면 안 나온 애들 찾으러, 다 대부분 가정 사정 때문에 못 나오는데, 그 찾으러 다녀야 됩니다. 막 도망치고 뭐 별일이 다 있습니다. 부모들한테 우리가 갔다 욕먹기도 하고, 못 보내겠다고. 그러니까 먹을 거 없는데 공부해서 뭐 하냐, 집도 지켜야 하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실지는 매일 무슨 돈 내라는 거는 많아요. 그러니까 외형상으로 무상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말은 무상이라 하고 돈은 내는데 나라에서 내라 이렇게는 안 하고. 쉽게 말하면 학교에서 무슨 그런 운영자금이랑, 나라에 무슨 어디 전적지를 꾸린다 하면 거기는 지원사업으로 이런 형태로 내니까는. 예산이 지급이 안 되지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무상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돈을 많이 냈죠. 학교 꾸리기 때문에 돈을 많이 내고. 학교를 시설이랑 책상 바꾼다고 해마다 이런 색칠도 하거든요. 그런데 돈을 많이 내고. 교과서도 돈 내야 되고. 지원(외부 건설이나 군대 등) 같은 것도 돈 내야 되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돈이 있어야죠. 당국에서 지원이라는 게 차별이 있죠. 중앙당 아이들의 창강유치원 이런 데는 다 배려받아요. 평양시에서도 백두산 줄기, 그런 아이들은 정말 머리에서 발끝까지 국가에서 키워주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돼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토대가 걸리면 못 가죠. 이제 아빠가 뭐 일본사람이다 해도 종합대학 못 가고 이런 게 있더라고요. 토대가 걸리면 일단 좋은 대학은 못 가요. 제가 경험한 사례는 그 애가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아요, 되게. 그래서 김일성 종합대학 보내겠다 했는데 할아버지가 저 귀국자셔서 못 간다고 포기했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5


성평등 달성 및 모든 여성과 여아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는 대하지 않아요. 간부도 100프로에서 여자는 3-4프로 차지하니까. 거의 다 남자들이 하고 있잖아요. 일단 뭐 한 자리에 남자하고 여자라면 아무래도 남자를 붙이고 그런 조건이 있으니까.” 

[2020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싸우다가 말로 안 되니까. 남자들은 말이 안 되면 주먹이 나가잖아요” 

[2020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다 여자 일. 우린 그저 응당한 거로 생각하지. 돈 벌어야지, 집안에 애를 키워야지, 집안 가사 다 돌봐야지, 다 여자들이 감당하지” 

[2020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여성 대의원을 보긴 봤어요. [...] 무슨 우리 국민들이 투표를 해서 하는 건 형식으로 하기는 해요. 표 자체를 그 사람 이름을 찍은 거를 그냥 내는 거죠. 의미가 없고 형식만 있는 거예요. 특급기업소에 지배인을 여성이 하는 경우도 있어요. 방직공장 지배인이 여자다. 거기는 항상 대의원 의무제적인 자리라고. 당지배인도 하고 당위원도 하고. 대학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야 되고 당에 충실한 사람.. 출신성분이 안 좋으면 절대 할 수가 없죠.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은 할 수가 없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못해요. 그게 세대주는 엄연히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가 죽으면 여자가 세대주가 되는 거죠” 

[2020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출신성분이랑 엄청 보지. 상급학교 진학할 때는 바탕이 좋고 모든 것이 다 좋아야 갈 수 있지요. 우리 아들 못 갔지 않아요. 엄마가 교화를 갔는데 어떻게 가요. 공부는 잘했는데...”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우선 농촌 자녀는 갈 수 없는 대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농촌 자녀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이렇게 한계가 있고. 그저 실제로 농촌 애들이 이렇게 뭐 화학공대 나오고 공장 기술자로 빠지면 농촌엔 사람이 점점 줄어들지 않습니까. 그래가지고 출신 성분을 보고, 그래서 아버지가 농장원이었다 하면 그 자식도 농장원이 돼야 하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장애인들 학교 못 다니는 것 같아요. 못 다니는 건지 부모님들이 안 보내는 건지 모르겠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장애인들은 학교 안 가는데 북한은. 못 오게 하는 건 같지는 않은데, 장애인들은 본인들이 학교에 갈 생각을 안 합니다. 학교에 가면 애들이 차별하니까 안 가죠. 남들보다 말을 못 한다거나 그러면 좀.”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지원은 없어요, 말로 하고. 그런데 무슨 명분을 내세워서, 학교 컴퓨터를 산다, 뭘 한다, 뭐 이렇게 해서 돈을 내라고 하거든요. 정부 지원은 없고 자체로 해야 돼요. 들쭉 철에 해마다 그렇게 3만, 5만 이렇게 내라고 하니까. 이렇게 해도 실제 학교에 컴퓨터 설치하는 거는 없어요. 저도 애들 때문에 학교에 돈을 계속 냈는데 실제 학교에는 컴퓨터가 서너 대밖에 없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남자가 물려받아요. 우리 아버지는 ‘(딸은)출가지 외인이다’하고 족보에도 딸들은 안 올려요” 

[2020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그 법을 나왔다는 거 알아도 그 법을 이행하게끔 조건을 지어줘야지. 그 법이 나와서 무슨 필요가 있어요. 위에서 그 조건을 지어 안 주고 ‘이런 법이 나왔다.’ 하고 시행을 안 하면 그게 무효가 되는 거예요. 뭐 부녀절을 내왔잖아요, 그것도 여성을 존대해준다고. 그런데 뭐 이행돼요? 안 이행하잖아요.” 

[2020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6 


모두가 물과 위생설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지속가능한 유지관리를 보장한다

“수도 시설은 돼 있는데 어떤 때 물 공급이 끊기는 때가 있어요. 또 아파트 높은 층에는 물이 올라 못 가고 그래서 높은 층 사람들은 길어서 먹어야 되고. 엘리베이터도 없고 10층 15층까지도 길어서 가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수도 시설이 다 되어 있는데 3일에 한 번 나올 때도 있고 한 주일에 한 번 나올 때도 있고, 겨울 같을 때는 안 나올 때도 있는데 대신 자연수가 있거든요. 사람들이 물이 안 나올 때는 리어커에다가 통을 오십리터 통을 두 개 세 개 길어다가 팔거든요. 그걸 사면 집까지 배달해줘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우리는 물이 안 나와요. 수도꼭지는 있는데 수압이 안돼서 1층에서 길어 올려야 돼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강물을 그대로 주는지, 나오는 물 자체가 시꺼먼 물들이 나와요. 북한에서는 물을 끓여 먹지도 않죠. 전기가 있나. 겨울이 되도 불을 못 떼는데. 나무가 있어야 물을 끓이지. 가라앉히거나, 그나마 물이 없으면 그대로 먹는 거예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2016년) 장티푸스, 파라티푸스(물로 인한 문제)는 좀 그냥 돌고 있었어요, 전기가 없으니까 그냥 흐르는 물을 퍼먹는데, 여기 사람들 같으면 죽었을 거예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7


모두를 위한 적정 가격의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하며

현대적인 에너지의 접근 보장한다

“2012년도부터 컴퓨터도 많이 늘어났어요. 3학년 때부터 컴퓨터 교육을 해요.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실습은 못하지만. 그 전에는 컴퓨터도 없었는데. 전기가 없어서 문제지.”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내가 무슨 엑스레이를 찍고 싶다 그럼 병원에 가잖아요. 순서가 없어요. 돈 갖고 온 사람이 먼저 해요. 엑스레이나 초음파나 전기 사정이 북한에서는 곤란하니까 전기 오는 시간을 맞춰서 하잖아요. 그게 끊기면 못하고 가는 거예요. 돈 주고 하는 사람이 먼저 하면 먼저 왔던 사람도 못 하고 가는 거예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2019년 3월 20일 날 우리 딸이 연탄가스로 사망했어요. [...] 우리 사촌동생네 아이하고 우리 맏딸하고 죽었더라구요. [...]평양에는 솔직히 전기가 오지 않으니까 저녁 7시 반부터 11시에 불이 와요. 아침에 5시부터 7시까지 준다고 그러는데 오는 날도 있고 안 오는 날도 있어요. [...] 그래서 겨울에는 탄을 때는 거에요, 무연탄. 그러니까 11월부터 3월까지는 탄 가스 경비를 도는 거에요. 탄내 먹고 사고 나는 현상을 없애자고. [...] 그런데 탄가스 경비서는게 경비원이에요. 경비원하고, 호안과 담당 보안원이 있어요. 호안과 담당 보안원들이 밤마다 가스 순찰을 한 바퀴씩 초소마다 도는 거에요. 김정은 방침에 따라서 한다고 하면서 이거를 소위 인권을 보장해 준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효과 없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특히 평양 같은 데는 제가 그저 매우 평양에 있으면서 정말 진짜 반감이 센 거는 제가 000구역에 살았거든요. [...] 양강도 한 개 도만한 그런 인구가 사는 뎁니다. 그야말로 그 주민 지대예요. 그저 계속 정전돼 있다나니까 내가 24층에 살고 있는데 계속 정전되다나니까 그 엘리베이터가 다니지 못해서 계속 걸어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되거든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8 


모두를 위한 지속적, 포용적,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촉진하며 생산적인 완전 고용과

모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증진한다

“월급은 한 달에 양성공이면은 1,300원이고 기계공은 실적에 따라 많으면 3,300원이였어요. 저는 3,000원 받았어요. 꼬박 받았는데 매달 주지 못하고 몇 달씩 밀려가면서 줬어요. 인민군대 지원비, 청년동맹비, 인체보험비(매달 300원, 사대보험비)등 내는 게 많았어요. 떼기만 하고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공장에서 제기되는 사회적 과제가 많았어요. 봄이 되면 나무 심기를 하고, 이런 게 너무 셀 수 없이 많았어요. 이런 거 떼고 나면 노임이 없어요. 한 달에 노임 탄 게, 잘하면 강냉이 국수 한 그릇 사먹을 정도만 나왔어요. 그 때 강냉이 국수 한 그릇에 5원 정도만 받았어요. 그것도 상당한 거였어요. 그것도 미누수 될 때가 태반이었어요. 그런 명목으로 다 제외했어요. 70-80 정도가 미누수였어요. 미누수는 월급이 3,000원인데 다 제외해도 500원이 모자라면 다음에 또 제외해야 하는 경우에요” 

[2015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노동의 대가가 무보수 노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배급받는 사람들은 그래도 보수가 되게 작지, 일한 거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냐면, 내 친구 엄마, 아부지가 조총련계 귀국잔데, 걔 엄마가 일본에서 대학 나왔어. 대학교 때야. 걔네 집 가서 술 한 잔 먹는데, 대학생들 워낙 일을 많이 시키니까 걔가 ‘엄마, 만약 일본에서 내가 이렇게 일을 하면 어느 정도 될 거 같애?’ 하니까 ‘부자지’ 하더라고, 단번에. ‘이 정도 일하면 부자 됐지.’ 그렇게 일을 많이 시켜.”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경로동이 있어요. 하루 6시간 노동. 경로동에 들어가는 것도 무슨 규정이 있어요. 규정과 분기에 한 번씩 검진을 해야 했어요. 아무 혜택이 없어요. 장애인들한테 오히려 일을 안 시키는 게.. 오히려 도움입니다.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저의 주변에는 장애인이 일하는 걸 못 봤어요. 왜냐면 성한 사람들도 일자리를 못 잡고 일해서 뭐 해요. 쌀을 안 주고 돈을 안 주는데 일을 누가해요. 그러니까 성한 사람들도 안 다니는데 (장애인들은) 일을 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집에서 부양을 받고 그러니까 와이프가 그러면 남편이 일을 한다든가. 대체로 집에 있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9 


복원력이 높은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고,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산업화를

증진 시키며 혁신을 장려한다

“건설 일을 했어요. 우리 부대에서는 도로 건설을 많이 했어요. 평양-개성, 평양-향산 희천, 그리고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도 하고 31호 도로라고 해서 특별 도로였어요. 일반차들은 못 다니는 수령 별장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했어요. 기계 수리는 부대 자체가 제일 처음부터 일을 했어요. 하다 보면 날짜가 지정되어 있어요. 바쁘면 예비노력동원까지 동원되는 거예요, 그런 일을 해봤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북한에는 일 안 할 자유라는 게 없어요. 응당 일해야 하는 거죠. 하기 싫으면 저같이 팔삼을 한다던가. 그러니까 직장에다 이름을 걸어놓고 나가서 내 사업을 하는 거죠. 돈도 안 주는 직장 있어서 뭐 해요. 회사에 할 일도 없고. 양강도에 회사가 열 개 있어요, 그러면 돌아가는 회사가 두 개밖에 안 돼요. 우선 첫째 전기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보다시피 직장에 안 나가면 처벌을 받겠지, 할 수 없이 나가는 거예요. 나가서 시간이나 때우고, 담배 한 대 피고 그러다가 들어오는 거죠. 내가 직장을 안 나가도 내 장사를 할 수 있는. 하다못해 아무 일이나 할 거 아니에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10


국내 및 국가 간 불평등을 감소한다

“(성분이나 토대차별은) 당연히 있죠. 김일성의 교시를 받았다던가. 부대에서 선임장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동생이 김정일이랑 한 번 만났던 적이 있었나 봐요. 그 선임장이 자기 전사를 때려서 죽였는데 교화를 물론 들어가야 하는데 안 들어갔어요. 또 국가적 공적이 있으면 감옥에 안 들어갈 수도 있는 거죠. 큰 간부하게 되면 자기 조카까지 할 수 있죠. 최소한 가족들은 다 보호가 되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첫째 딸은 한국에 같이 왔어요. 강00이에요. 원래 제가 한국에 올 생각 안 했는데 조선에서 저 때문에 대학을 못 갔거든요. 조선은 불공평해서 군대하고 대학은 이혼한 집은 안 되거든요. 그래 가가 의대에 가기로 했는데 우리가 딱 그해에 리혼을 했거든요. 그래서 못 갔어요. 원래 애가 조선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 아이 때문에 김기성 고등중학교라고 수재 뽑는 학교가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신체가 딸려서 못 보냈어요. 중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김일성상계관 수여식 대상자가 있어요. 그거 받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거든요. 그 대상자 명단에 딸 이름이 있었어요. 그런데 부모가 리혼을 해서 못 갔어요. 학교 졸업 당시였어요. 5월 달에. 2학기 마지막 학기였어요. 그때 명단을 뽑았어요. 그런데 제가 리혼을 해서 그 명단에 못 들었어요.”

[2015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제가 의학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연이 있었어요. 친구가 있었는데 북한 아인데 정말 친하게 지냈어요. 마음을 주고 지냈는데 그 아이가 공부를 참 잘해요. 학년에서 1등 해요. 그런데도 고등반에 입학을 못해요. 왜 그런가 보니 아버지가 북한전쟁 때 치안대였어요. 며칠 국군이 있을 때 도와줬다고 해서 입학을 못해요. 제가 심리적으로 너무 타격을 입어서 잊혀 안 져요. 그 애는 선생을 능가하는 머리를 가졌어요. 정00에요. 정00가 원래 의학 가고 싶어 했어요. 해부학에 대해서 사람 뼈가 1만 개가 넘는 거를 짚으면서 말했어요. 다 암기한 거죠. 가는 공부했으면 유명한 분 됐을 거예요. 선생이 설명하다가 틀리면 본인이 설명하는데 모든 과목을 그렇게 공부를 잘했어요. 결국은 농촌에 농장원으로 갔어요.”

[2015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장애인들은 학교 안 가는데 북한은. 못 오게 하는 건 같지는 않은데, 장애인들은 본인들이 학교에 갈 생각을 안 합니다. 학교에 가면 애들이 차별하니까 안 가죠. 남들보다 말을 못 한다거나 그러면 좀.”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북한에서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 만나게 해주는 사람들은 토대가 좀 괜찮아야 되요. 우리 같은(국군포로 가족) 경우는 도망칠까 봐 없다고 부인해요. 현재 살아있어도 부인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11


도시와 주거지를 포용적이며 안전하고 
복원력 있고 지속 가능하게 보장한다

“근데 여자 단체들이 남자 단체보다 더 세게 일했어요. 점점 더 세지더라고요 내라는 것도 더 많고. 꾸리기도 그렇고 수해 나서 둑을 쌓아야 해요. 2년에 한 번씩은 무조건 수해 나거든요. 강하천이 너무 높아가지고 여기 대한민국처럼 물을 많이 저장 못 시키고 그냥 흘려보내거든요. 산에 나무가 없고 이러니까 비만 세게 오면 수해가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둑을 그냥 쌓아야 하는 거예요. 매 2년에 한 번씩. 그걸 직장들도 동원해서 직장에서 여기서 쌓고 저 직장에서 이만큼 쌓고 하면 여맹에서는 이만큼(보통 양의 2~3배 정도) 둑을 쌓으라고 했어요. 여맹은 완전히 돌격대라니깐요. 저희 와이프는 그래서 돈 내고 안 갔어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이번에 애육원 고아원 이런 거를 다 꾸렸어요. 이번에 김정은이가 시범으로 그런 거 각 도마다 만들면서. 16년도에 많이 지었어요. 다 지원 나가고 했죠. 도에서 꾸려서. 그런 거 인민들이 지었는데 김정은 은덕으로 지은 거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이천 명인가 삼천 명 정도 될 거예요. 아주 현대적으로 멋있게 꾸렸어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주택보장은 원래 집을 신청을 하고 도인민위원회 주택부서가 있어, 거기다 일단 신청해서 허가가 떨어지면 그 사람 가족 수 이런 걸 다 따져가지고 원래 집을 배정하게 돼 있지. 아직도 현존해 그 시스템은. 그런데 이게 수요와 공급에 이게 완전 맞지 않는 거야. 수요는 엄청 많은데 공급을 못 해요. 그래서 이게 실제로는 무너진 거야. 국가가 통제력을 잃었어요. 주택, 부동산은 완전히. 북한에서는 원래 저들끼리(개인들끼리) 돈 주고 사고, 팔고 원래는 불법이잖아. 이거 불법인 거 뻔히 알면서도 국가가 주택을 공급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터치를 못 해.”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12 


지속 가능한 소비 및 생산 양식을 보장한다

“북한에서는 분리수거라는 걸 거의 안 합니다. 한국에 와서 분리수거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러면 쓰레기는 어떻게 버리냐고 할 수 있을 텐데 집집마다 퇴비장(흙을 모아둔 곳)을 하나씩 만들어 놓고 거기에 쓰레기를 버립니다. 집에서 나오는 먼지라던가, 쓰레기라던가 모든 물건을 거기에 버리는데 재활용으로 나오는 것들 또한 그 퇴비장에 버려서 불로 태웁니다. 불로 태워서 대부분 다시 퇴비(비료대용)로 사용을 합니다. 그리고 플라스틱병 같은 경우에는 귀해서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편이죠.” 

[2020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풍계리는 기본 거기서 일하는 애들이 다 정치범 죄수들이었어요. 땅 파고 갱도 파고 이러는 애들이 다 죄수 애들이에요. 북한 사람들은 아파도 그게 방사능 때문에 아프다 그런 연관을 못 시켜요. 길주에 장애인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길주 물이 나쁘다고. 거기 길주 물이 제일 나쁘다고. 그게 핵[폐기물] 때문이라고는 생각을 안 하죠.”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그런 거 있지요. 핵 개발하는데 황해북도 평산(군), 우라늄 나오는 광산이란 말이에요. 군인들 몽땅 거기로 들이밀어 가지고 거기서 일을 시키면서, 기름이나 공급해서. 우리 때 그 131 지도국이라고서 원자력, 우라늄 캐는 군대가 있거든요. 저기 가서 우라늄 방출하는 애들은 암만 잘 먹여도 몸이 안 난다고 그러더라고요. 제대돼서도 실실 앓는다, 이런 소리를 들었댔어요. 군인 애들한테 우라늄 캐는 걸 시키죠. 비밀이 엄수되어야 하니까. 일반 사람들한테 출퇴근시키면서 하려면 비밀 다 노출되니까요. 현역 군인들이 들어가서 다 하는 거죠. 그 방사능을 다 억제해서 나오는 줄 알지 그것 때문에 몸에 피해를 입는 줄은 몰랐댔죠.”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거기 일하는 사람이) 아픈 거는 우리 도 병원에 아는 처녀애가 간호원 일하다 나니, 핵실험장에서 일했거나 핵실험 피해를 받은 사람은 1년에 한 번씩. 7월 1일부터 7월 30일까지 함경북도가 도(道)적으로 다 달라붙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의료 봉사. (피해자들) 다 불러들여서 치료해주고, 그 기간에는 먹고 싶은 거 최대로 잘 먹이고 이런 사업은 있습니다. (환자는) 함경북도 사람만 그렇죠. 도 병원에 있는 거 보니까 대체로 많지 않습니다. 12명, 13명. 이런 사람들은 년에 한 번씩 꼭꼭 7월이면. (핵 피해자인 거는) 그 간호원이 말합디다. 저 사람들이 실지 이제처럼 영예 군인이 맞는데 어디서 일했는가 하면 다 핵, 군사 복무할 때 핵실험장에서 일하던 사람이라고. 그런 데서 복무하다가 핵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그 간호원이 그러더라고. 그 사람들 보니까요, 불구, 하반신 불구도 있고, 눈 이래 찌부러진 사람도 있고. 그저 전혀 몸을 가누기 힘들어서 이제 다 폐허 상태가 된 사람도 있고, 말라서.”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그래서 기형아들이 나오는 거죠. 함경북도 길주 쪽에 가면 기형아들 제일 많이 나와요. 소문이 아니라 거기 실제로 많이 나와요. 길주에 저 몇 번 가봤어요. 길주에서 멀지 않은 데에 핵실험장 있거든요. 풍계리. 길주 풍계리 그쪽에 기형아들 좀 나와요. 방사능 때문에. (북한에 있을 때) 당연히 알죠. 그리고 물이나 이런 농사가 잘 안 돼요. 그런 피해 때문에. 거기 가게 되면 진짜 거리 걸어가는 게 좀 쓸쓸해요. 좀 한적하고. 분명 길주인데 쓸쓸하고 한적한 분위기에요, 다른 데에 비해.”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13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영향에 맞서기 위한

긴급 대응을 시행한다

“우리가 올 때 백 년 만에 보는 대홍수가 났어. 몽땅 마을이 없어지고, 많이 죽었잖아요. 그때 제가 보위지도원한테 물어봤어요. 우리가 알기에 우리 관내에 천명은 죽은 거 같은데 진짜 몇 명 죽었나 하니까. 쉿(손모양). 그런 거 알아서 뭐 하게 그런단 말이에요. (중략) 누가 죽었단다 이런 얘기를 못 하게 한단 말이에요. 가족이 몽땅 죽은 집이 있어도 주변 사람들한테 입 다물라. 인민반에서 말 못 하게 하니까. 결국 사람이 죽은 건 그 사회에 대한 비평과 비난이 되기 때문에 비밀이 되는 거예요.”

[2019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기후변화에 대한 교육 받았어요. 빙산이 녹는다 어쩐다 이런 얘기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2020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배급 없어도 다 장사하죠. 장사는 다 불법이긴 한데 그렇게 안하면 굶어 죽으니깐. 장사 안 하는 사람들은 간부들이나 국가에서 주는 게 있어요. 직장 다닌다고 해서 다 주는 게 아니고. 위에 간부들 만 받는 거예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장원들은 한 해 농사를 지어도 바치는 게 있어요. 바치고 나면 봄에는 정말 먹을 게 없어요. 몇 대 몇으로 강냉이를 꾸어먹고 그렇더라고요. 항상 먹을 게 없어가지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국가에서 주는 식량으로는 다 충족 못하죠. 한 30%정도는 충족하고 나머지 70%는 장마당에서 샀어요. 식량이 어쨌든 저는 그래도 돈 주고 사서 먹었어요. 다른 집들은 식량이 좀 곤란해서 집도 팔고 싼 집을 해서 사는 사람들도 봤어요. 우리 윗집에 있는 아줌마도 집에 애들이 3명 됐는데 한창 먹을 나이니까 식량이 부족해서 그 여자가 피를 뽑고 그랬어요. 그러다 나니까 평양에 행사하러 나가게 되면 쓰러져서 업혀 들어오고 그랬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14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양, 바다, 해양

자원을 보존하고 지속 가능하게 사용한다

“(배급을) 왜 안 주냐면 저희가 산에다가 농사를 짓잖아요. 그 농사를 짓는 거를 배급으로 대체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또 (개인) 농사도 못 짓게 하거든요.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하고. 완전 죽으란 소리지. 작년에도 이거 심지 못하게 해서, 그래 우리 시아버지가 ‘너네 이거 배급도 안 주고. 국가적으로 어려운 거 아는데 백성들은 뭘 먹고 살라는 거냐. 차라리 우리를 다 죽이고 (나무) 심어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못 심는다.’ 그랬어요. 소가 없어서 남편이 앞에서 끌고 제가 가대기질 하는데. 산림감독원들이 올라와서 그거를 막 매치면서 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 땅을 다 기관, 기업소한테 인도해 줬다는 거에요. 나무 묘목을 심게. 그런데 그건 심을 때가 이미 지났어요. 봄에 심어야 묘목이 살지 여름에 심으면 죽어요. 그래서 제가 “(나무 묘목) 심어라 심으면 내가 묘목도 가꾸고 해서 살겠다” 하니까 그렇게는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니 그러면 너네 어찌라는 거야, 나를 죽이자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가 언제 죽으랬는가?” 그래요. 아니 그게 나라에서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 하고 죽으라는 거 아닌가, 막 이렇게 싸움하니까 우리 시아버지가 당원이었고 나도 당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야, 나도 당원인데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늙었으니까 일없어. 정치범에 들어가도 돼. 내 새끼들이 불쌍해 그렇지.” 이렇게 말 하시고. 우리 아버지 전쟁 일어나서 5살 때 부모 잃고 고아로 크셨는데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근데 그 때 고생보다 지금이 더 하대요. “북한이 망하려나 보다” 자꾸 그러시더라고요. 전쟁이 나서 맨발로 돌아다니면서 부모 찾으러 다니던 그때보다 지금 고생이 더하대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약 같은 거는 국가에서 다 제공 해줘요. 국가에서 포함된 농장이라고 치면 다 줘요. 요즘에는 개인 농장 보다 국가 농장이 많아요. 국가 땅이라면 더 좋고. 길옆에 있는 땅은 다 국가 땅이고 산꼭대기 위에 있는 땅은 개인 땅이었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배급 없어도 다 장사하죠. 장사는 다 불법이긴 한데 그렇게 안하면 굶어 죽으니깐. 장사 안 하는 사람들은 간부들이나 국가에서 주는 게 있어요. 직장 다닌다고 해서 다 주는 게 아니고. 위에 간부들 만 받는 거예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장원들은 한 해 농사를 지어도 바치는 게 있어요. 바치고 나면 봄에는 정말 먹을 게 없어요. 몇 대 몇으로 강냉이를 꾸어먹고 그렇더라고요. 항상 먹을 게 없어가지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국가에서 주는 식량으로는 다 충족 못하죠. 한 30%정도는 충족하고 나머지 70%는 장마당에서 샀어요. 식량이 어쨌든 저는 그래도 돈 주고 사서 먹었어요. 다른 집들은 식량이 좀 곤란해서 집도 팔고 싼 집을 해서 사는 사람들도 봤어요. 우리 윗집에 있는 아줌마도 집에 애들이 3명 됐는데 한창 먹을 나이니까 식량이 부족해서 그 여자가 피를 뽑고 그랬어요. 그러다 나니까 평양에 행사하러 나가게 되면 쓰러져서 업혀 들어오고 그랬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15 


지속가능한 육상생태계 이용 보호·복원·증진,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 사막화 방지, 

토지 황폐화 중지 및 복구, 

생물 다양성 손실 중단

“(배급을) 왜 안 주냐면 저희가 산에다가 농사를 짓잖아요. 그 농사를 짓는 거를 배급으로 대체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또 (개인) 농사도 못 짓게 하거든요.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하고. 완전 죽으란 소리지. 작년에도 이거 심지 못하게 해서, 그래 우리 시아버지가 ‘너네 이거 배급도 안 주고. 국가적으로 어려운 거 아는데 백성들은 뭘 먹고 살라는 거냐. 차라리 우리를 다 죽이고 (나무) 심어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못 심는다.’ 그랬어요. 소가 없어서 남편이 앞에서 끌고 제가 가대기질 하는데. 산림감독원들이 올라와서 그거를 막 매치면서 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 땅을 다 기관, 기업소한테 인도해 줬다는 거에요. 나무 묘목을 심게. 그런데 그건 심을 때가 이미 지났어요. 봄에 심어야 묘목이 살지 여름에 심으면 죽어요. 그래서 제가 “(나무 묘목) 심어라 심으면 내가 묘목도 가꾸고 해서 살겠다” 하니까 그렇게는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니 그러면 너네 어찌라는 거야, 나를 죽이자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가 언제 죽으랬는가?” 그래요. 아니 그게 나라에서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 하고 죽으라는 거 아닌가, 막 이렇게 싸움하니까 우리 시아버지가 당원이었고 나도 당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야, 나도 당원인데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늙었으니까 일없어. 정치범에 들어가도 돼. 내 새끼들이 불쌍해 그렇지.” 이렇게 말 하시고. 우리 아버지 전쟁 일어나서 5살 때 부모 잃고 고아로 크셨는데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근데 그 때 고생보다 지금이 더 하대요. “북한이 망하려나 보다” 자꾸 그러시더라고요. 전쟁이 나서 맨발로 돌아다니면서 부모 찾으러 다니던 그때보다 지금 고생이 더하대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약 같은 거는 국가에서 다 제공 해줘요. 국가에서 포함된 농장이라고 치면 다 줘요. 요즘에는 개인 농장 보다 국가 농장이 많아요. 국가 땅이라면 더 좋고. 길옆에 있는 땅은 다 국가 땅이고 산꼭대기 위에 있는 땅은 개인 땅이었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배급 없어도 다 장사하죠. 장사는 다 불법이긴 한데 그렇게 안하면 굶어 죽으니깐. 장사 안 하는 사람들은 간부들이나 국가에서 주는 게 있어요. 직장 다닌다고 해서 다 주는 게 아니고. 위에 간부들 만 받는 거예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장원들은 한 해 농사를 지어도 바치는 게 있어요. 바치고 나면 봄에는 정말 먹을 게 없어요. 몇 대 몇으로 강냉이를 꾸어먹고 그렇더라고요. 항상 먹을 게 없어가지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국가에서 주는 식량으로는 다 충족 못하죠. 한 30%정도는 충족하고 나머지 70%는 장마당에서 샀어요. 식량이 어쨌든 저는 그래도 돈 주고 사서 먹었어요. 다른 집들은 식량이 좀 곤란해서 집도 팔고 싼 집을 해서 사는 사람들도 봤어요. 우리 윗집에 있는 아줌마도 집에 애들이 3명 됐는데 한창 먹을 나이니까 식량이 부족해서 그 여자가 피를 뽑고 그랬어요. 그러다 나니까 평양에 행사하러 나가게 되면 쓰러져서 업혀 들어오고 그랬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16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 증진, 모두에게 정의 보장과

모든 수준에서의 효과적이고 책임성

있으며 포용적인 제도 구축 

“(배급을) 왜 안 주냐면 저희가 산에다가 농사를 짓잖아요. 그 농사를 짓는 거를 배급으로 대체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또 (개인) 농사도 못 짓게 하거든요.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하고. 완전 죽으란 소리지. 작년에도 이거 심지 못하게 해서, 그래 우리 시아버지가 ‘너네 이거 배급도 안 주고. 국가적으로 어려운 거 아는데 백성들은 뭘 먹고 살라는 거냐. 차라리 우리를 다 죽이고 (나무) 심어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못 심는다.’ 그랬어요. 소가 없어서 남편이 앞에서 끌고 제가 가대기질 하는데. 산림감독원들이 올라와서 그거를 막 매치면서 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 땅을 다 기관, 기업소한테 인도해 줬다는 거에요. 나무 묘목을 심게. 그런데 그건 심을 때가 이미 지났어요. 봄에 심어야 묘목이 살지 여름에 심으면 죽어요. 그래서 제가 “(나무 묘목) 심어라 심으면 내가 묘목도 가꾸고 해서 살겠다” 하니까 그렇게는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니 그러면 너네 어찌라는 거야, 나를 죽이자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가 언제 죽으랬는가?” 그래요. 아니 그게 나라에서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 하고 죽으라는 거 아닌가, 막 이렇게 싸움하니까 우리 시아버지가 당원이었고 나도 당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야, 나도 당원인데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늙었으니까 일없어. 정치범에 들어가도 돼. 내 새끼들이 불쌍해 그렇지.” 이렇게 말 하시고. 우리 아버지 전쟁 일어나서 5살 때 부모 잃고 고아로 크셨는데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근데 그 때 고생보다 지금이 더 하대요. “북한이 망하려나 보다” 자꾸 그러시더라고요. 전쟁이 나서 맨발로 돌아다니면서 부모 찾으러 다니던 그때보다 지금 고생이 더하대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약 같은 거는 국가에서 다 제공 해줘요. 국가에서 포함된 농장이라고 치면 다 줘요. 요즘에는 개인 농장 보다 국가 농장이 많아요. 국가 땅이라면 더 좋고. 길옆에 있는 땅은 다 국가 땅이고 산꼭대기 위에 있는 땅은 개인 땅이었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배급 없어도 다 장사하죠. 장사는 다 불법이긴 한데 그렇게 안하면 굶어 죽으니깐. 장사 안 하는 사람들은 간부들이나 국가에서 주는 게 있어요. 직장 다닌다고 해서 다 주는 게 아니고. 위에 간부들 만 받는 거예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장원들은 한 해 농사를 지어도 바치는 게 있어요. 바치고 나면 봄에는 정말 먹을 게 없어요. 몇 대 몇으로 강냉이를 꾸어먹고 그렇더라고요. 항상 먹을 게 없어가지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국가에서 주는 식량으로는 다 충족 못하죠. 한 30%정도는 충족하고 나머지 70%는 장마당에서 샀어요. 식량이 어쨌든 저는 그래도 돈 주고 사서 먹었어요. 다른 집들은 식량이 좀 곤란해서 집도 팔고 싼 집을 해서 사는 사람들도 봤어요. 우리 윗집에 있는 아줌마도 집에 애들이 3명 됐는데 한창 먹을 나이니까 식량이 부족해서 그 여자가 피를 뽑고 그랬어요. 그러다 나니까 평양에 행사하러 나가게 되면 쓰러져서 업혀 들어오고 그랬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SDG 17 


이행수단 강화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재활성화

“(배급을) 왜 안 주냐면 저희가 산에다가 농사를 짓잖아요. 그 농사를 짓는 거를 배급으로 대체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또 (개인) 농사도 못 짓게 하거든요.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하고. 완전 죽으란 소리지. 작년에도 이거 심지 못하게 해서, 그래 우리 시아버지가 ‘너네 이거 배급도 안 주고. 국가적으로 어려운 거 아는데 백성들은 뭘 먹고 살라는 거냐. 차라리 우리를 다 죽이고 (나무) 심어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못 심는다.’ 그랬어요. 소가 없어서 남편이 앞에서 끌고 제가 가대기질 하는데. 산림감독원들이 올라와서 그거를 막 매치면서 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 땅을 다 기관, 기업소한테 인도해 줬다는 거에요. 나무 묘목을 심게. 그런데 그건 심을 때가 이미 지났어요. 봄에 심어야 묘목이 살지 여름에 심으면 죽어요. 그래서 제가 “(나무 묘목) 심어라 심으면 내가 묘목도 가꾸고 해서 살겠다” 하니까 그렇게는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니 그러면 너네 어찌라는 거야, 나를 죽이자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가 언제 죽으랬는가?” 그래요. 아니 그게 나라에서 배급도 안 주고 농사도 못 짓게 하고 죽으라는 거 아닌가, 막 이렇게 싸움하니까 우리 시아버지가 당원이었고 나도 당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야, 나도 당원인데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늙었으니까 일없어. 정치범에 들어가도 돼. 내 새끼들이 불쌍해 그렇지.” 이렇게 말 하시고. 우리 아버지 전쟁 일어나서 5살 때 부모 잃고 고아로 크셨는데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근데 그 때 고생보다 지금이 더 하대요. “북한이 망하려나 보다” 자꾸 그러시더라고요. 전쟁이 나서 맨발로 돌아다니면서 부모 찾으러 다니던 그때보다 지금 고생이 더하대요.” 

[2018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약 같은 거는 국가에서 다 제공 해줘요. 국가에서 포함된 농장이라고 치면 다 줘요. 요즘에는 개인 농장 보다 국가 농장이 많아요. 국가 땅이라면 더 좋고. 길옆에 있는 땅은 다 국가 땅이고 산꼭대기 위에 있는 땅은 개인 땅이었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배급 없어도 다 장사하죠. 장사는 다 불법이긴 한데 그렇게 안하면 굶어 죽으니깐. 장사 안 하는 사람들은 간부들이나 국가에서 주는 게 있어요. 직장 다닌다고 해서 다 주는 게 아니고. 위에 간부들 만 받는 거예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농장원들은 한 해 농사를 지어도 바치는 게 있어요. 바치고 나면 봄에는 정말 먹을 게 없어요. 몇 대 몇으로 강냉이를 꾸어먹고 그렇더라고요. 항상 먹을 게 없어가지고.”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국가에서 주는 식량으로는 다 충족 못하죠. 한 30%정도는 충족하고 나머지 70%는 장마당에서 샀어요. 식량이 어쨌든 저는 그래도 돈 주고 사서 먹었어요. 다른 집들은 식량이 좀 곤란해서 집도 팔고 싼 집을 해서 사는 사람들도 봤어요. 우리 윗집에 있는 아줌마도 집에 애들이 3명 됐는데 한창 먹을 나이니까 식량이 부족해서 그 여자가 피를 뽑고 그랬어요. 그러다 나니까 평양에 행사하러 나가게 되면 쓰러져서 업혀 들어오고 그랬어요.” 

[2017 NKDB 인터뷰 (NKDB 통합 인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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